배정자는 1870년 김해에서 역관 배지홍의 딸로 태어났었는데, 당시 기록과 문헌에 의하면 엄청난 미인이었다고 전해집니다. 하지만 배정자가 어렸을때쯤 아버지 배지홍은 민왕후(명성황후)가 주도하는 민씨 정권에 반대하고, 흥선대원군에게 충성했다는 죄목으로 처형당하고 맙니다.
그녀의 집안은 한순간에 역적의 집안으로 낙인찍히고, 배정자의 어머니는 충격에 장님이 되어 매우 어렵게 살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어려운 생활을 어떻게든 극복하기 위해, 기생과 비구니등 여러가지 직종을 하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1885년 배정자는 동래부사 정병하를 만남으로써 새로운 삶을 펼칠 기회를 얻게 됩니다.
당시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던 배정자는 자신과 가족들을 쫒고있는 민씨정권의 군졸들을 피하기 위해, 처형당한 아버지의 친구인 정병하에게 의탁하였습니다. 정병하는 그녀가 조선에선 살아남기 어렵다는것을 알려주고선, 일본인 무역상 마츠오에게 주선하여 배정자를 일본으로 갈수있게끔 해주었죠. 이후 일본으로 건너간 배정자는 당시 갑신정변의 실패로 일본에 건너가 있었던 개화지식인 안경수와 김옥균을 만나게 되었고, 이들의 인맥을 통해 당시 일본의 정치인이었던 이토 히로부미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배정자를 '다야마 사다코'라는 일본식 이름을 주었고, 자신의 수양딸로 거두었습니다.
이토의 딸이된 배정자는 승마, 수영, 사격, 변장술등 여러가지 첩보 훈련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녀에게 조선에 대한 분노를 이용할 기회를 주었죠. 바로 조선에 건너가 일본을 위한 첩보활동을 하라고 지시를 내린것입니다.
각각 드라마 각시탈과 영화 '가비'에서 나오는 배정자에 모티브를 얻은 캐릭터. 가비의 경우엔 이름까지 배정자의 일본식 이름인 '사다코'를 그대로 채용하였습니다.
1894년 조선으로 건너간 배정자(사다코)는 화려한 미모와 말빨로 조선의 왕인 고종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리고 왕뿐만 아니라 당시의 조선 고관들 및 신식군대 지휘관 등 핵심 수뇌부의 연심을 잡는데 성공하여, 여러 애정행각을 통해 조선에 대한 정보를 모조리 빼내었습니다. 1905년 러일전쟁이 한창이던때에, 고종은 일본에 대한 위협을 느낀 나머지 자신의 거처를 옮길 제2의 아관파천을 기획하지만, 배정자가 미리 정보를 일본에 전달한 관계로 실패하고야 말았습니다.
이후 이토 히로부미가 안중근 의사에게 암살당하자 자신의 양아버지였기 때문에 매우 슬퍼했지만, 이미 일본인과 결혼한 몸으로써, 일제가 주는 재물때문에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할수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한일합방 이후에도 스파이 활동을 지속했는데, 이번엔 일제의 대륙침략에 방해되는 독립군 색출이었습니다.
만주로 건나간 그녀는 항일투쟁을 벌이던 독립군들을 만나, 자신의 미모로 그들을 유혹하였습니다. 그녀의 미인계에 당한 항일 독립군들은 정보를 내다바치거나, 알아서 자멸되었기에 그 공으로 일제의 호의를 두툼히 받을수 있었습니다. 1919년대 당시, 조선의 여성독립운동가이자 여성인권운동가였던 '하란사'가 파리강화회담에 보낼 '한일병합에 대한 부당성에 대한 서찰'을 지니고 북경에 머문적이 있었는데 당시 의문의 죽음을 당했습니다. 당시 중국 지역까지 스파이활동을 넓힌 배정자가 그녀를 암살한거라는 설이 있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세간에선 배정자의 별명을 '흑치마'라 칭했습니다.
배정자는 50대의 나이가 되자 스파이 활동을 접고 은퇴했습니다. 그녀는 일제로부터 6만여평의 토지를 수여받았으며, 이후 태평양전쟁이 일어나자 70대의 노인네임에도 조선 위안부 송출업무를 맡기까지 했죠.
일제 패망이후 배정자는 경기도 고양군의 야산에 숨어살다가 발각되고야 맙니다. 그녀는 반민특위의 처벌을 받게되는데, 한일병합에 적극협력한 자를 처벌하는 반민법 제1조에 의해 최초로 구속된 '요주의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승만의 방해로 반민특위가 흐지부지 되면서 배정자는 풀러났고, 6.25 전쟁도중 80세의 천수를 누리며 사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