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한 인생을 산 조선의 왕비 24명

핫이슈 2018. 10. 1. 20:12

불행한 인생을 산 조선의 왕비 24명

조선시대 왕은 총 27명이지만 왕비는 46명임. 아무래도 의외로 일찍죽는 왕비들이 있었고, 또 왕비의 자리는 국모의 자리라고 비울수 없다는 법도로 인해 대부분 왕들이 이미 장성한 세자가 있음에도 계비를 들이는 일들이 많았음. 이번에는 불행한 인생을 산 왕비들을 정리해보겠음.















1. 신덕왕후 강씨 (태조의 두번째 왕비)

1356년 7월 13일 출생
1396년 9월 15일 사망 (40년 2개월)




" 의붓아들들에 의해 친정은 물론 자식들도 살해되고 죽어서도 천대받은 비운의 왕비"




태조의 두번째 왕비 신덕왕후는 조선이 건국되기 이전에 이성계의 두번째 부인으로 들어옴. 고려시대에는 본부인을 2명까지 들일수 있어서 신덕왕후는 친정이 빵빵한 호족집안임에도 본인보다 21살이나 많은 태조의 두번째 부인으로 들어온것임.

남편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고 왕이 되었을때 이성계의 첫부인 신덕왕후는 이미 위장병으로 세상을 떠나서 고인이였음. 자동으로 신덕왕후가 왕비가 됨.

하지만 여기서 신덕왕후의 아들이 세자가 되는 문제로 본처 신의왕후의 자녀들과 큰 갈등을 격게 되었고 신덕왕후가 1396년 심부전으로 40세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면서 비극이 시작되었음.

왕자의 난으로 신덕왕후의 두 아들 무안대군과 의안대군은 살해되었고, 딸 경순공주의 시댁도 박살나고 이로 인해 공주는 출가해서 비구니가 되었으나 이듬해 화병으로 세상을 떠남.

그리고 친정인 강씨집안은 권력구도에서 숙청되엇고, 태조 사후 신덕왕후는 아예 폐출되어 그녀의 릉은 방치되어 있다가 사후 200년뒤에야 다시 복권되었음.

어떻게 보면 진짜 사후가 불행한 왕비로는 신덕왕후가 진짜 갑인거 같음.
























2. 원경왕후 민씨 (태종 이방원의 왕비)

1365년 7월 11일 출생
1420년 7월 10일 사망 (53년 11개월)



"남편을 왕으로 만드는데 가장 큰 공을 세웠지만 대놓고 토사구팽당한 비운의 왕비"





태종 이방원의 부인이자 세종 이도의 어머니로 유명하지만 사생활은 누구보다 불행했던 왕비 중 한명으로 역사에 남은 비운의 왕비임.

1382년 17세 나이에 아버지 민제의 제자이던 이방원과 결혼했고, 시아버지가 왕이 되면서 이방원은 정녕군이 되었고 그녀는 정녕옹주에 봉해짐. 뒤이어 그녀의 남동생 민무구,민무질은 이방원의 심복이 되었음.

남편이 왕자의 난을 일으킬때 매우 큰 공을 세웠고 남편이 왕이 되자 왕비가 된 그녀는 부귀영화를 누릴꺼 같았으나...이때부터 그녀의 인생은 하강곡선을 그리게 되었음.

남편 태종은 그녀의 네명의 남동생 민무구.민무질.민무휼.민무회를 모두 유배시킨후 처형시켰고 이로인해 원경왕후의 아버지 민제는 화병으로 죽었음.

더 기구한 원경왕후의 어머니 대부인 송씨는 1424년 죽었는데 82살까지 살았음. 네 아들은 물론 큰딸 원경왕후의 죽음까지 지켜보게 됨. (하지만 사위 태종 이방원의 죽음도 지켜봤으니 그나마 한이 풀렸을듯..)

어쨋든 친정이 박살나고 큰 아들 양녕대군이 세자에서 폐위되고, 둘째아들 효령대군은 출가까지 하고 심지어 태종은 왕이 되고 대놓고 후궁 여럿을 들이는 등 왕후의 속을 뒤집었다고 함.

태종이 세종에게 양위하고 그녀는 "후덕왕대비"로 불렸고, 2년뒤인 1420년 그녀는 괴질 (말라리아)에 감염되어 54세 생일을 하루 앞두고 세상을 떠나게 됨.

그녀가 죽고 2년뒤 1422년 남편 태종도 세상을 떠나고 네아들과 남편은 물론 큰딸과 원수같은 사위의 죽음까지 지켜본 원경왕후의 어머니 삼한대국부인 송씨는 1424년 82세 나이로 세상을 떠남.





















3. 헌덕왕후 권씨 (문종의 왕비)

1418년 4월 17일 출생
1441년 8월 10일 사망 (23년 3개월)



"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고, 사후 아들의 비명횡사는 물론 딸까지 인생 망치고 본인은 묘가 파해치고 친정가족들이 전부 처형된 비운의 왕비"




문종의 유일한 왕비로 원래는 세자의 후궁 소훈으로 있었음. 세자빈인 김씨와 봉씨가 잇다라 폐출되자 당시 경혜공주를 낳은 권씨가 세자빈이 되었음.

하지만 5년뒤인 1441년 원손인 단종을 낳고 산후병으로 23세 나이에 세상을 떠나게 되있음. 만일 그녀가 이른나이에 안죽고 단종 즉위 후 왕대비로써 섭정을 했다면 단종이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 않았을것임.

그녀가 죽고 비극은 그녀 사후 시작됨. 시동생 수양대군에 의해 아들 단종은 왕위에서 폐위되고 이른 나이에 교살형으로 인생을 마감함. 딸 경혜공주는 남편을 잃고 비구니로 출가해서 숨죽여 살다가 38살에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남.

친정집안 역시 박살났는데, 현덕왕후의 어머니 해령부부인 최씨와 남동생 권자신 역시 단종복위운동에 관련되어 처형되었음. 현덕왕후의 묘 역시 파해쳐져서 바닷가에 쳐박혀 있다가 사후 100년이 지나서야 왕비로 복권되었음.

야사에는 세조가 한센병을 얻은것이 꿈에 현덕왕후가 나와서 침을 뱉어서라는데 그녀 입장에서는 그러고도 남을듯.




























4. 정순왕후 송씨 (단종의 왕비)

1440년 1월 출생
1521년 7월 사망 (81년 6개월)



" 17세에 사별하고 64년이나 외롭게 사별한 비운의 왕비"



14세 나이에 왕비로 간택되어 단종의 부인으로 입궁함. 원래 왕비,세자빈은 왕대비나 대왕대비가 간택하지만 알다시피 현덕왕후.소현왕후 모두 당시 고인인지라 단종의 숙부들의 부인들이나 선왕의 후궁들이 그녀를 왕비로 간택함.

단종이 왕으로써 입지가 거의 없어서 그녀 역시 왕비로써 입지는 없는거나 마찬가지였음. 왕비가 되었으나 몆년뒤 단종이 상왕이 되고 노산군으로 내쳐지면서 그녀 역시 왕대비에서 노산군부인으로 내쳐짐.

그 뒤 단종이 교살되고, 그녀는 동대문 밖에서 조용히 남편을 기리면서 살았음. 세조가 그녀를 걱정해서 여러번 식량이나 생활물품을 주었으나 죄다 거절했다고 함.

세조가 죽고 세조비 정희왕후가 그녀에게 은밀히 생활에 어려움이 없도록 지원을 해주었고, 자식이 없던 정순왕후를 위해 시누이 경혜공주의 아들 정미수가 양자로 입적되었음.

하지만 정미수 역시 1514년 56세 나이로 세상을떠나고, 정순왕후는 자식도 남편도 없이 외로운 노년을 보내다가 1521년 81세 나이로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음. 그나마 친정 남동생과 조카들 덕분에 그래도 위안이 되었을꺼라고 생각이 됨.




























5. 장순왕후 한씨 ( 예종의 왕비)

1445년 2월 22일 출생
1462년 1월 5일 사망 (16년 8개월)


" 어린 나이에 왕비는 커녕 세자빈 신분으로 비운의 짧은 삶을 산 왕비"

예종의 정비로 세자빈 시절 한명회의 딸이라는 신분으로 세자빈으로 들어옴. 시집와서 세자빈으로써 시아버지 세조와 시어머니 정희왕후를 잘 모셔서 귀감이 되었다고 함.

하지만 갑자기 혼절한 후 급격히 건강이 쇠해진 뒤 1462년 16세 어린 나이에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음. 그녀 사후 장순왕후의 막내여동생이 시조카 성종의 첫 왕비로 들어오는데 바로 공혜왕후 한씨임.

자매가 둘 다 왕비로 들어와서 비운의 삶을 산 안타까운 경우.



























6. 공혜왕후 한씨 (성종의 첫부인)

1456년 11월 8일 출생
1474년 4월 30일 사망 (17년 4개월)


"어린 나이에 왕비가 되었지만, 비운의 인생을 산 안타까운 왕비"



성종의 첫 왕비로 13세 나이에 왕비가 되었으나, 자식도 없이 17세 어린 나이에 원인모를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비운의 삶을 살았음.

성격이 착하고 순박해서 시할머니 정희왕후. 시어머니 소혜왕후. 작은시숙모 인순왕후까지 잘 모셔서 모두의 사랑을 받았음.

이른 나이에 죽어서 안타까운 비운의 왕비임.
































7. 거창군부인 신씨 (연산군의 왕비)

1476년 11월 29일 출생
1537년 4월 8일 사망 (60년 4개월)



" 남편 때문에 자식.오빠들까지 잃고 본인도 폐출된 비운의 왕비"




연산군의 부인으로 13세 나이에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입궁함. 연산군과 사이는 진짜 좋아서 일찍 죽은 자식들까지 총 7명을 낳았다고 함. 뿐만 아니라 시어머니 정현왕후. 시조모 소혜왕후. 시작은조모 안순왕후까지 매우 잘 모셨다고 전해짐

연산군이 갑자사화 당시 마구 살육을 벌일때 왕 앞에서 무릎을 꿇을정도로, 매우 성품이 어질었다고 전해짐. 뿐만 아니라 궁녀,상궁에게도 존댓말을 사용한 유일한 왕비라고 전해짐.

연산군이 폐위되어 유배되었을때 그녀의 두아들 폐세자와 대군이 처형되었고 유일한 딸은 이혼당했음. 거기에다가 친정오빠들도 쳐형되고 조카딸 단경왕후도 폐출됨.

그녀는 그 뒤 폐주의 아내지만 중전으로써 좋은 일도 많이 했던터라, 국가의 지원을 받으면서 조용히 살다가 1537년 60세 나이에 지병으로 세상을 떠남.

























8. 단경왕후 신씨 (중종의 첫 왕비)

1487년 1월 4일 출생
1557년 12월 27일 사망 (70년 10개월)



" 불과 7일간 왕비에 있고 혼자서 50년을 수절한 비운의 왕비"




중종의 첫 왕비로 그가 진성대군 신분으로 있을때 시집옴. 그녀의 막내고모는 연산군부인 신씨로 조카와 고모가 이복형제와 결혼한 경우.

1506년 반정이 일어났을때 친정아버지와 숙부들이 모두 처형되고 막내고모인 왕비 신씨도 폐출되었고 이로 인해 반정공신들의 주장으로 단경왕후는 7일만에 왕비에서 쫒겨남.

그 뒤 사저에서 1557년 죽을때까지 무려 51년을 혼자서 수절하고 사는 비운의 인생을 대표하는 케이스. 실제 역사에서 중종은 단경왕후를 빨리 잊어서 10명이나 후궁을 들인걸로 유명하며 폐출된 이후 단경왕후는 한때 생활고까지 격었다고 전해짐.

1557년 70세의 나이로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사후 몆백년 뒤에야 다시 왕비로 복권되었음.


























9. 장경왕후 (중종의 두번째 왕비)

1491년 8월 10일 출생
1515년 3월 16일 사망 (23년 7개월 )



" 이른 나이에 어린 아들을 두고 세상을 떠난 비운의 왕비"




중종반정 직후 후궁인 숙의로 들어왔으나 단경왕후가 폐출되면서 숙의에서 왕비가 되었고, 20세에 효혜공주를 24세에 인종을 낳고 산후병으로 생을 마감함.

만일 그녀가 이른 나이에 안죽었다면.과연 인종이 훗날 계모 문정왕후의 손에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컸을것임.

그녀의 이른 죽음으로 아들까지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게 된 경우임.

























10. 인성왕후 박씨 (인종의 왕비)

1514년 10월 7일 출생
1578년 3월 6일 사망 (63년 5개월)



"남편을 억울하게 잃고, 서슬퍼런 시어머니로 인해평생 뒷방신세로 산 왕비"






인종의 왕비로 11살 어린 나이에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궁에 들어왔으나,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불임이였던걸로 추정됨.

남편 인종이 왕이 되었으나 몆개월만에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고, 의붓시어머니 문정왕후에게 밀려서 사실상 투명인간 신세로 남은 인생을 살아야했음.

선조가 즉위한 후에도 명종비 인순왕후에게 밀려서 투명신세로 살다가 1578년 지병으로 63세 나이에 비운의 인생을 마감했음.



























11. 의인왕후 박씨 (선조의 첫 왕비)

1555년 4월 15일 출생
1600년 6월 27일 사망 (45년 2개월)



" 남편의 사랑을 평생 못받고 비운의 생을 살았던 왕비"




1569년 15세 나이에 왕비가 되었으나, 불임이였고 선조는 인빈김씨등 후궁만 사랑해서 늘 뒷방신세였던 비운의 왕비임.

자식이 없어서 일찍 죽은 후궁 공빈김씨의 두 자녀 임해군과 광해군을 친자녀처럼 길렀는데, 임진왜란 당시 선조가 후궁 인빈김씨만 데리고 도망가는 비운을 격기도 했음.

이렇게 부인대접 못받던 의인왕후는 임진왜란 피난살이가 고됐는지, 급병을 얻어서 1600년 45세 나이로 세상을 떠남.

























12. 인목왕후 김씨 (선조의 두번째 왕비)

1584년 12월 15일 출생
1632년 8월 13일 사망 (47년 7개월)



"의붓아들에 의해 아들은 물론 본인 아버지와 동생들까지 잃은 비운의 왕비"



19세 나이에 자기보다 29살이나 많은 선조의 계비가 된 후 정명공주와 영창대군을 낳고 광해군의 잠재적인 라이벌이 되었음.

선조가 죽고, 광해군이 즉위하자 소성왕대비로 불리었고, 아들인 영창대군이 유배되고 처형되고 친정아버지와 남동생.오빠들이 처형되자 서궁에 유폐되기도 하였음.

그 뒤 서궁생활을 10년 가까이 하다가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폐위되고 인조가 즉위하자 명의대왕대비로 불리게 되었음. 그 뒤 편안하게 살다가 1632년 불과 47세 나이로 세상을 떠남.






















13. 문성군부인 유씨 (광해군의 부인)

1576년 8월 15일 출생
1623년 10월 31일 사망 (47년 2개월)



" 반정으로 아들을 잃고, 스스로 자살한 비운의 왕비"


광해군의 부인으로 어린 나이에 세자빈이 된 이후, 의붓시어머니 인목왕후와 남편 사이 갈등으로 심적고통을 같기도 했으며, 광해군의 여성편력으로 많이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전해짐

일화로는 중궁전에 불상을 놓고 늘 "다음생에는 왕실여인으로 태어나지 않게 해주십시오"라고 빌었다고 함. 광해군이 폐위되고 유배되었을때 같이 유배되었고 아들 폐세자 질이 도주를 시도하다 잡혀 처형된 후 그녀 역시 아들을 따라서 자살함.




















14. 장렬왕후 조씨 (인조의 두번째 왕비)

1624년 11월 26일 출생
1688년 9월 20일 사망 (63년 8개월)



"어린 나이에 시집와서 평생 고독한 신세로 산 비운의 왕비"



15세 어린 나이에 29살이나 많은 인조의 두번째 왕비가 되었고, 의붓아들들보다 어렸으며 손자인 현종이나 소현세자의 아들들과는 20살도 차이나지 않았음.

남편 인조는 늘 후궁 귀인조씨만을 아꼈고, 그녀는 늘 뒷방신세였음. 설상가상 20대 젊은 나이에 풍으로 쓰러져 거동도 불편했다고 전해짐.

남편이 죽고 의붓아들 효종이 왕이 되자 20대 젊은 왕대비인 그녀에게는 별다른 권력도 없었고 조용히 대비전에서 지냈음. 그러던 중 그 유명한 예송논쟁에 휘말리기도 했고 효종이 죽고 손자인 현종이 즉위하자 36세에 대왕대비가 되었음.

현종 사후 증손자 숙종이 즉위했을때 효종비 인선왕후는 이미 고인이여서 그대로 대왕대비였고 손자며느리이자 현종비 명서뫙후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전해짐.

말년에 궁녀한명을 입궁시켜서 숙종의 후궁으로 만드는데 그 궁녀가 바로 장희빈임. 어쨋든 자식하나 없이 평생 외롭게 산 그녀는 1688년 또다시 중풍으로 쓰러져서 63세 나이에 생을 마감함.





























15. 단의왕후 심씨 (경종의 첫 왕비)

1686년 7월 11일 출생
1718년 3월 10일 사망 (31년 7개월)



"자식없이 젊은 나이에 급사한 비운의 왕비"




경종의 첫 왕비로 12세 나이에 당시 왕비이던 인현왕후가 직접 간택해서 세자빈으로 입궁함. 젊었을때부터 몸이 허약해서 혼절하기 일 수 였고, 자녀도 낳지 못했음.

1718년 31세 젊은 나이에 갑자기 쓰러져서 의식불명 상태로 있다가 자식 없이 세상을 떠남.


























16. 인경왕후 김씨 (숙종의 첫 왕비)

1661년 9월 3일 출생
1680년 10월 26일 사망 (19년 1개월)





" 젊은 나이에 두 딸을 잃고, 본인도 세상을 떠난 비운의 왕비"





만 6세 어린 나이에 왕세자빈으로 간택되었으며, 그 뒤 17세.18세에 연달아 공주른 낳았으나 모두 태어난지 얼마 안되서 요절함.

그 뒤 본인도 19세 나이에 천연두로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남. 그 뒤 알다시피 장희빈과 인현왕후의 비극이 시작됨.

인경왕후는 성격이 엄해서 숙종이 꼼짝 못했다고 전해지며, 성격이 시어머니 명성왕후를 닮았다고 전해짐.



























17. 인현왕후 민씨 (숙종의 두번째 왕비)

1767년 4월 23일 출생
1701년 8월 14일 사망 (34년 3개월)



"남편 잘못 만나서 천당과 지옥을 오간 비운의 왕비"





숙종의 계비로 인경왕후 사후 왕비로 간택되어, 입궁했음. 하지만 숙종의 사랑을 거의 받지 못하였고 당시 숙종의 마음속에는 오로지 희빈장씨 뿐인터라 늘 뒷방신세였음.

급기야 1688년에는 폐비가 되어 6년이나 궁밖에 있다가 1694년이 되어서야 다시 왕비로써 궁에 들어옴.

1701년 34세 이른 나이에 종기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남. 자식이 없었으나 장희빈의 아들 경종을 아꼈고, 사후 숙종이 죽은뒤 인현왕후 옆에 안장되었음.

오로지 평생을 당파싸움에 휘말려 고생스럽게 산 대표적인 케이스.






















18. 선의왕후 어씨 (경종의 두번째 왕비)

1705년 12월 14일 출생
1730년 8월 12일 사망 (24년 7개월)

1718년 경종의 정비 단의왕후가 죽고 다음해에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입궁했으며 다음해에 경종이 즉위하자 왕비가 되었음.

선의왕후의 나이가 어직 어린데도, 왕세제로 영조가 책봉되었고 시동생 영조와 갈등이 매우 심했다고 알려짐. 경종이 죽고 불과 20세에 왕대비가 되었으며 시동생 영조와의 갈등이 갈수록 심해짐.

야사에는 선의왕후가 효장세자를 독살했다고 해서 영조가 왕대비인 그녀를 유폐했고, 이로 인해 스스로 곡기를 끊어서 아사했다고 하지만, 역사에서는 죽기 직전까지 몸을 떨며 통곡을 하고 읍성(눈물을 흘리며 우는 소리)을 냈다고 함.

또한 손으로 뭔가를 치는 듯한 행동을 보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에 영조가 의관들이게 그러한 증후를 본 적이 있는지 묻자 중관이 헛소리를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고 함.

선의왕후가 죽고 영조는 본래 대비의 장례를 축소시키고 국상기간에 귀인 이씨를 영빈으로 올리고 축제까지 벌여서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고 함.

불과 20살에 청상과부가 되어서 5년뒤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 비운의 왕비였음.
























19. 정성왕후 서씨 (영조의 첫 왕비)

1693년 1월 12일 출생
1757년 4월 3일 사망 (64년 2개월)



" 조선 역사상 최장재임이자, 늘 뒷방신세이던 왕비"




영조가 연잉군으로 있던 시절 영조의 정실부인으로 결혼했고, 영조가 왕세제가 되자 세제빈이 되었고 뒤이어 왕이 되자 왕비가 되었음.

32년이나 왕비자리에 있었는데도 원인모를 이유로 영조에게 외면수준으로 외면당했고, 이로 인해 자녀를 한명도 낳지 못하였음. 심지어는 그녀의 환갑잔치는 영조가 기분 나쁘다고 엎어버렸을정도였음.

야사에는 그녀가 천대받은 이유가 첫날밤 영조가 손이 고운 이유를 물으니 정성왕후는 고생을 안해서라고 답했는데, 영조는 이게 자기의 신분을 비웃는거라고 생각했다고 함.

하지만 가장 유력한 건, 영조 즉위 초 역모에 정성왕후의 조카 서달수가 연루되었는데, 이게 가장 큰 원인이라는게 정설임.

50대에 낙상사고를 격고 거동이 불편했던 그녀는 64세 되던 해 위궤양과 부정맥으로 세상을 떠나는데 영조는 자기 부인이 죽었음에도 눈물 한방울 안흘리고 딸인 화완옹주의 남편이 죽자 화완옹주의 집으로 가버림...

그야말로 평생 남편에게 외면받은 비운의 왕비였음.



















20. 효순왕후 조씨 (진종의 왕비)

1716년 1월 8일 출생
1751년 12월 30일 사망 (35년 11개월)




" 13살에 과부가 되고 평생 수절하다 죽은 비운의 왕비"





12살 나이에 영조의 장남 효장세자의 빈으로 간택되었으나 다음해에 효장세자가 이른나이에 세상을 떠나게 됨. 그 뒤 궁에 남아서 시아버지 영조를 수발하면서 인생을 살게 됨.

그녀 역시 35세 이른 나이에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효순빈"으로 불리다가 정조가 효장세차의 양자로써 즉위한 이후 효순왕후로 추존되었음.

























21. 효헌왕후 김씨 (헌종의 첫 왕비)

1828년 4월 27일 출생
1843년 10월 26일 사망 (15년 5개월)




" 16세에 이른 나이에 죽은 비운의 왕비"




안동김씨 출신으로 10세 나이에 왕비가 되었으나 자녀없이 1843년 16세 나이로 세상을 떠남.

너무 일찍 죽었고, 남편인 헌종 사이에서 자녀는 없음.



















22. 철인왕후 김씨 (철종의 왕비)

1837년 4월 27일 출생
1878년 6월 12일 사망 (41년 1개월)




철종의 왕비로 14살에 왕비가 되었으나, 남편이 죽고 자녀없이 평생 병풍으로 인생을 산 비운의 왕비 중 한명으로 역사에 남은 인물

철종 사후 고종이 즉위하면서 대비가 되었고, 위에 헌종 비 효정왕후와 익종 비 신정왕후가 살아있는데다가 흥선대원군이 끔찍히 싫어하는 안동김씨였던탓에 늘 조용히 살았다고 전해짐.

1878년 폐결핵으로 창경궁 양화당에서 세상을 떠남.























23. 순명효황후 민씨 (순종의 첫 왕비)

1872년 11월 2일 출생
1904년 11월 5일 사망 (32년 3일)

순종의 첫 왕비로 10살 어린 나이에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입궁하였음. 을미사변 당시 누군가의 것인지 모르는 피를 뒤집어쓰고 울고 있었고, 이를 궁녀들이 발견하고 한 쪽에 피신시켰다고 함.

1904년 32세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는데, 어의가 암으로 복수가 찬걸 오인하는 바람에 약을 잘못 먹어서 세상을 떠남.
















24. 순정효황후 윤씨 (순종의 두번째 왕비)

1894년 9월 19일 출생
1966년 2월 3일 사망 (71년 4개월)

조선의 마지막 왕비로 어린 나이에 순종의 계비로 들어와서 비운의 인생을 산 왕비. 나라가 망하고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는것부터 6.25전쟁까지 온갖 비운을 다 지켜봤음. 지난 1966년 71세 나이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