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뿌리격인 부여.
고구려 동천왕 시기에도 부여는 8만여 호에 달하는 인구를 과시하며 3만 호에 불과한 고구려를 압도하는 국력을 자랑한 바 있다. 고대 국가의 국력은 인구와 비례한다. 이는 직접적인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농업이 당시 경제의 전부였기 때문이고, 무기 또한 발전하지 못해 사실상 군사력이 인구수와 동일시되던 고대 사회로써는 어떻게 보면 당연한 얘기. 실제 부여는 선제 이래 한 번도 파괴되지 않은 도성을 자랑하던 강국이었다
그리고 부여의 뒤를 이은 두막루.
두막루 또한 꽤 오랜기간 존속해있던 나라.
후에 지리적인 요소탓에 몽골로 흡수되어 한반도와 거리가 멀어졌다.
두개는 엄연히 고구려와 함께 만주지역의 한반도 역사임.
부여를 들어본 사람은 있으나 두막루는
생소할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