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말싸미] 팩션인 거 아는데도 느껴지는 역사왜곡의 불쾌함과 거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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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면모만 보더라도 압도적으로 기대되는 영화로

무려 살인의 추억 3인방이 다시 뭉친 영화,

이미 많은 매체에서 다뤄졌지만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를 다루고

국민배우 송강호가 세종대왕을 맡아 화제가 된 영화 [나랏말싸미]를 관람하였습니다

 

먼저 배우들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할 수 없겠죠

송강호 배우는 영화가 어떻든 역할이 어떻든 항상 그 자리를 빛나게 하는 정말 국민배우입니다

혹평이 많았던 [마약왕]에서도 연기만큼은 누구도 지적할 수 없었는데

이번 작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눈물이 고여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같은 그 눈빛은 잊을 수 없네요

박해일 배우는 올곧고 뜻을 굽히지 않는 신미스님 역을 맡았습니다

다른 분들은 호평이 많던데 저는 너무 하나의 타입으로만 연기를 밀고 나가

오히려 너무 단조롭게 느껴졌습니다.

이 부분은 감독의 디렉팅인지, 각본 상의 캐릭터 문제인지 명확치 않기에 넘어가도록 하고,

전미선 배우님은 연기야 뭐 더할나위 없고

정말 스크린에서 볼 때마다 왠지 모를 서글픔이 느껴지더군요

괜히 가슴 한 켠이 아려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초반부와 중반부에는 약간의 유머가 있어 시사회로 가득찬 상영관에서도

몇 번의 웃음이 다들 터져나왔습니다

조금 겉돌고 진행과 별 상관없는 학조와 진아의 풋풋한 우정?도 재밌었고요

한글의 창제 과정이나 창제 방법에 접근하며 조금은 전문적인 내용도

이해할 수 있게 친절히 전달합니다 (이해하기 쉽다고는 함부로 말 못하겠습니다만)

하지만 후반부로 가며 급격히 그 힘을 잃어버립니다

[남한산성]과 비교하는 분이 있으시던데 솔직히 전혀 그 급은 안 됩니다

[남한산성]이 주화파와 척화파 사이 어찌할 수 없는 패배한 역사를 다루며

관객조차 어찌해야 할 지 감히 결정을 내리기 힘든 갈등과 딜레마를 묘사하는 반면

[나랏말싸미]는 갈등이라 할 것도 너무 약하게 묘사되며

진행이나 해소가 되긴 하는지 싶고 결말조차도 완결성 없이 찝찝함만 남기고 끝납니다

 

영화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신미라는 스님이 한글 창제에 관여하였다는

하나의 가설을 토대로 만든 영화입니다

이러한 야사를 사용해 만드는데는

첫째, 이를 깊게 다뤄 그 사이 일어나는 화학적 작용을 통해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거나 

둘째, 이 사실을 진실로서 널리 알리고자 하는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는 후자에 훨씬 초점을 맞춘 듯합니다

하지만 어디까지 야사에 불과한 이야기며 전문가들 사이에선 거의 파기되다시피한 학설을

대규모 자본의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알리고자 한다면 역사왜곡 문제가 대두될 수밖에 없습니다

 

전 역사를 토대로 한 '창작물'에 고증 문제를 너무 까다롭게 다루는 건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이전 고증 논란이 일었던 [안시성]의 경우에도

어디까지나 오락성에 초점을 둔 [안시성]에 고려군의 갑옷 고증이

그 정도로 자세하게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었죠

하지만 이 영화는 그 정도가 너무 심합니다

세종대왕이 거의 단독으로 창제했다는 설과

집현전 학자들과 함께 창제했다는 두 가지 일반적인 가설을 부정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영화만 본다면 거의 이 신미스님이 거의 다 만든 것처럼 묘사합니다

천재적이고 혁신적인 창제 원리읙 공을 모두 이쪽으로 전가시키며

세종은 거의 닦달하고 지시하는 정도에 그칩니다

단순히 도움을 줬다거나 참여하는 정도였다면 이 정도로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을텐데

신미라는 인물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존경하는 인물로 꼽는

세종대왕이라는 인물을 의도적으로 약하게 표현하고 그 공적을 빼앗으면

당연히 거부감이 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반적으로 한글 창제에 있어 갈등이 있다고 한다면

백성을 위해 한글을 창제하려는 세종대왕과

지식과 문자를 독점하려는 양반층의 갈등을 생각하기 마련인데

이 영화는 그 갈등보다 불교와 유교의 것으로 이를 옮겨가며

공감하기도 힘들고 '너무 나갔다'는 느낌까지 들게 합니다

신미라는 인물이 불교 국가를 세우려는 야심까지 보인 마당에

이를 불교와 유교의 갈등으로 내세우기엔 그 설득력도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결국 어느 것도 완결되지 못하고 이야기를 하다 만 듯한 느낌이 드는 결말로 귀결되게 합니다

거의 무교에 가까운 제가 너무 강한 불교의 색채에 거부감을 느꼈는데

타 종교인들이나 독실한 신자분들이 본다면 어떨까 싶습니다 

단순히 '새로운 시각으로 한글 창제를 조명'이 아니라

'한글 창제는 이렇게 신미스님이 다 했다는 게 팩트다'라고 주장하는 것 같아요

불교 짱짱맨 이런 얘기 하려고 이 배우들을 모았나 싶기도 하고.

 

앞에서도 말했지만 역사왜곡 문제는 심각합니다

역사학자 분들이 보시면 정말 뒷목 잡고 쓰러지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이런 사극 영화는 부모들이 교육용으로 자녀를 데리고 와서 보게 할텐데

야사나 파기된 가설에 불과한 내용을 진실로 믿게 될까 겁이 나네요

제가 부모라면 전혀 보여주고 싶지 않고 주위에서 보여주려 한다면 말리고 싶습니다

실제 시사평 중에 꽤나 설득력 있다, 진짜 창제의 진실을 알게 되었다

이런 얘기 보니 그 걱정은 더어욱 커져가고요.

 

언어학적인 내용도 나름의 고증은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인물의 생각과 정신에 맞닿아 있는 아래하(ㆍ) 글자에 대한 내용이

언어학적으로는 그다지 매치가 안 되며

중세 국어와 현대 국어의 차이점 때문에 크게 와닿지 못하는 점은 아쉬웠습니다

 

단점만 적은 것 같은데 그래도 그러려니 하고 볼만은 합니다

연기는 말할 바 없이 좋고 초중반부는 유머도 어느 정도 있어 재밌기도 하고요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작품이 [남한산성]이라는 그 해 최고의 작품 베스트에 들어가는 영화와

비교되는 이유를 솔직히 모르겠네요.

비슷한 점은 조금 지루할 수 있다?는 점 말곤 없는 것 같아요

이야기 진행도 많이 밋밋하고 평범하며

작품성이나 주제 측면 모두 발끝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전미선 배우님 유작이기도 해서 기대했는데 여러모로 아쉬운 영화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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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동시개봉, 일본 개봉 확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