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도 있는 제갈량의 후손들

핫이슈 2020. 4. 8. 17:51

한국에도 있는 제갈량의 후손들

한국의 제갈씨는 제갈량의 아버지 제갈규를 시조로 삼는다. 제갈규의 5세손인 제갈충(諸葛忠)이 한나라가 망하자 위(魏)나라에 불만을 품고 미추 이사금 치세의 신라로 망명하여 지리산에 살기 시작하였는데, 그 이후로 후손들이 신라에서 벼슬을 하거나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는 등의 변천사를 겪다가 21대손 제갈공순(諸葛公巡)이 신라 흥덕왕 때 공식적으로 귀화하여 우리나라 제갈씨의 중시조가 되었다.


제갈충은 제갈량의 증손자로 알려져 있다. 제갈충은 제갈경의 아들이며 또한 제갈경은 제갈첨의 차남이라고 한다. 제갈량의 아들인 제갈첨은 유선의 딸과 결혼하여 부마가 되었으므로, 이와 같은 유래에 한치의 틀림도 없다면 한국 제갈씨는 제갈량은 물론이고 유비의 후손이기도 한 셈. 물론 여기에도 이설은 있어 제갈충은 제갈첨의 차남인 제갈경의 아들이 아니라 제갈첨과 함께 촉한 멸망시에 면죽관에서 전사한 장남 제갈상의 아들이라고도 하고 아예 단지 제갈규의 5대손이라고만 전하기도 하여 자세한 내막은 정확히 알 수 없음을 암시하기도 한다. 그리고 제갈충이 제갈경의 아들이면 제갈규의 5대손이 아니라 4대손이 된다.


결국 제갈규의 5대손일 뿐이라는 단서만을 따르자면 한국의 제갈씨는 제갈량의 동생인 제갈균의 4대손일 수도 있고 제갈근의 아들이자 제갈량의 양자였던 제갈교의 손자 제갈현이 제갈각의 삼족이 멸족된 뒤 다시 제갈근의 후사를 잇게 되었으므로 오나라 제갈씨의 적자인 제갈현을 제외한 그의 동렬 형제의 후손이 될 수도 있다. 이처럼 구체적인 내용에 확신을 가질 수는 없지만, 한국 제갈씨 유래의 공식적인 내용은 아무튼 제갈규의 5대손인 제갈충이 신라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게 된 이래 그 후손이 중국으로 한번 귀환하였다가 제갈규의 20대손에 해당하는 제갈공순이 9세기 초 다시 신라로 귀화함으로써 한국 제갈씨의 중시조로 일컬어지게 되었다는 것.[2]


물론 당연하겠지만 모든 제갈씨가 망명한 것은 아니라서 여전히 중국에는 제갈량, 제갈근의 후손들이 건재하며 팔괘촌을 비롯한 제갈씨의 집성촌들도 관광 명소로 알려져 있다. 현존하는 제갈씨는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물론 같은 가문이지만, 중국의 제갈씨는 제갈탄의 아들 제갈정의 후손의 비율이 제갈규의 후손보다 더 높은 편이라고 한다. 한국의 제갈씨는 오직 귀화한 제갈규의 5대손 일족 뿐이지만 중국에는 제갈규의 후손 중에서도 제갈량, 제갈근, 제갈균 등 오남매 모두를 비롯해서 그들과 비교적 멀지 않은 촌수일 제갈탄, 제갈서, 제갈직 등 낭야군 출신의 동향 친족들은 물론이고 당대의 모든 제갈씨들이 번성하고 그 후손을 남겨 대를 이어왔기 때문에, 한국의 제갈씨가 제갈량의 후손임이 틀림없다는 단서 하에서 오히려 한국에 제갈량의 고유한 피와 유전자가 더욱 독보적으로 전해지고 있는 역설적인 그림이 되는 셈이다.


또 고려 현종(顯宗)때 제갈홍(泓)과 제갈형(瀅) 두 형제가 군(君)에 해당하는 고위의 벼슬을 각각 받자, 자신만의 성씨를 가질만한 신분이 되었으므로 제씨와 갈씨로 분성하여 각각의 시조가 되는 일도 있었는데, 대한제국 광무 기해년(1899)에 중추원과 장례원에 상청하여 복성을 허락하는 판결이 내려졌다. 이로써 일부 제씨와 갈씨가 다시 제갈씨로 복성하였다고 한다.


때문에 한국에는 현재 제갈씨, 제씨, 갈씨가 모두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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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글자가 같은게 아니라 정말로 제갈량네 가문 제갈 가문의 후예들


제갈량의 증손자이자 한국 제갈씨들이 시조로 삼고 있는 제갈규(제갈량 아부지)의 5세손인 제갈충이 신라에 망명해 지리산에 살기 시작하며 국내 제갈씨가 시작됐다고 함


제씨와 갈씨도 제갈씨에서 비롯된거라 마찬가지